[열린 광장] “그만해… 그만하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교제하는 목사가 있다. 교제라기보다는 온라인에 올라오는 그의 글을 읽으면서 공감을 표시하는 정도다. 구름도 쉬고 바람도 자고 간다는 추풍령 자락에 있는 교회에서 목회하면서 담백하게 써 내려가는 그의 글을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일주일에 두세 번씩 올라오던 그의 글이 얼마 전부터 멈췄다. 몇 주가 지난 후에 다시 써나가는 그의 글이 조금 이상했다. ‘병원, 고통, 투병, 간호, 상처’ 이런 우울한 단어가 그동안의 빈자리를 채워나갔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그가 사역하는 교회에서 50m 정도 떨어져 이웃하는 집에서 개를 기르고 있었는데 곰사냥과 투견의 혈통을 이어받은 맹견이라고 했다. 얼마 전, 그의 아내가 홀로 산책을 나갔다가 그 맹견에게 공격을 당해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돌아왔다고 했다. 그의 글이 멈춘 것도 그때였다. 주인들이 멀리 일을 보러 나간 사이 어찌 된 일인지 맹견을 가둔 철장 문이 열렸고, 산책하러 나갔던 그의 아내를 덮쳤다고 했다. 육중한 몸으로 달려든 맹견을 이겨내기에 그의 아내는 너무도 연약했다. 맹견의 공격을 받은 그의 아내는 살려달라고 소리쳤지만 인적 없는 산골에서 가련한 여인의 부르짖는 소리는 허망한 울림으로 사그라들 뿐이었다. 저항하고 때려도 봤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날카로운 이빨로 팔뚝이 으스러지도록 물어뜯고 있는 맹견의 화만 돋울 뿐이었다. 끔찍한 고통 속에서 ‘아 이렇게 죽는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모든 것을 포기하려고 할 때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고 한다. 그녀는 자신의 왼팔을 물고 흔드는 맹견의 머리를 오른손으로 부드럽게 쓰다듬으면서 자상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만해… 그만하자….” 그러자 맹견의 눈빛이 부드러워지면서 언제 그랬냐는 듯 이빨을 풀고 집으로 돌아가더란다. 그렇게 맹견에게서 풀려난 그녀는 부랴부랴 남편에게 연락했고, 소식을 듣고 달려온 남편은 아내를 데리고 병원으로 달렸다. 동네 병원에서 치료할 수 없다는 말에 대학병원으로 가서 응급 처치와 수술을 받고 겨우 고비를 넘겼다고 했다. 고비는 넘겼지만 갈 길은 여전히 멀다고 했다. 철심을 박고 이식해 놓은 뼈가 잘 붙어야 하고, 큰 상처들은 성형해야 한다고 했다. 재활 치료도 해야 하고, 심리적 트라우마도 극복해야 할 과제라고 했다. ‘그만해… 그만하자…’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그녀가 했다던 이 말이 마음속에 남아 떠날 줄을 모른다. 코로나19라는 맹견에게 물린 세상은 바이러스를 물리치기 위해서 큰 노력을 기울였다. 마스크 쓰기와 거리 두기, 자가 격리는 기본이고, 백신도 여러 차례 맞으면서 어떻게든 코로나바이러스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을 쳤다. 그런데 맹견처럼 날카로운 이빨로 아귀차게 물고 있는 코로나바이러스는 웬만해선 이빨을 풀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도무지 벗어날 것 같지 않은 코로나바이러스의 위기 속에서 개에 물린 한 시골 목회자의 아내가 했다던 그 말을 되새겨본다. ‘그만해… 그만하자…’ 누가 알겠는가? 코로나바이러스가 이빨을 풀고 슬그머니 자취를 감출지 말이다. 새해에는 제발 그런 세상이 오기를 기대한다. 이창민 / 목사·LA연합감리교회열린 광장 병원 고통 동네 병원 시골 목회자